올해 상반기가 끝나기 전, 내가 원하는 세 가지 분야에 대한 목표를 잡았다. 그중 1순위가 건강이다. 여러 분야 중 건강을 1순위로 택한 명확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자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는 느낌을 매우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관절 이곳저곳이 쑤시고 왼쪽 고관절이 정말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즉,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생긴 것이다.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당연한 몸이었는데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건강이 최고다'라는 말은 익히 들어왔지만 자신의 건강에 대한 걱정은 크게 없었다. 담배는 전혀 피우지 않고 술이나 야식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름 건전한 생활 습관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해가 넘어갈수록 몸은 나에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무시할 수 없는 몸의 신호를 받으니 건강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렇게 멈춰있던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살을 빼고 싶어서, 건강해지기 위해서, 체력 시험을 보기 위해서 등등 각자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운동을 시작한다. 동기는 모두 달라도 그 운동에 재미를 느끼기 때문에 지속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는 시작은 '걷기'였다. Covid 19로 세상이 뒤숭숭해졌고 덩달아 유럽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시선이 더욱 뾰족해졌다. 좀처럼 이탈리아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나는 그런 시선을 피하기 위해 더욱 집안에 웅크리게 되었고 그렇게 무기력한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모든 것에 의욕이 없어진 나는 침대와 한 몸이 되었고 세상을 덮친 흉흉한 질병이 사라지길 기다렸다. 시간은 흐르고 조금씩 바깥 활동에 대한 제지가 사라져 갔다. 웅크린 시간 동안 내 몸 구석구석은 망가졌고 가장 먼저 허리에서 SOS 신호를 보냈다. 우울증으로도 고생 중이었던 나는 살기 위해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밖으로 나갔다. 이것이 나의 달리기의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달리기를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그저 걸었다. 집 뒤의 동산을 걷고 또 걸었다. 뒷산에 나있는 비포장도로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했다. 그렇게 매일같이 소나무 사이를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새소리를 들으며 탁한 마음을 맑은 공기로 채워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달리기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달린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달리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코로나 발생 이후 <언니의 독설>로 유명하신 김미경 강사님이 온라인 대학을 만들었고 온라인 모임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친언니의 도움으로 나도 강의를 듣게 되었고 여러 온라인을 통한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연이 닿은 분들 중에 달리기에 진심이신 분들이 계셨고 덕분에 좋은 영향을 받아 나도 조금씩 달리게 된 것이다.
나의 달리기 여정은 그리 꾸준하지 못했다. 달리다 멈추다를 반복했다. 세월은 흐르고 몸은 여기저기 아프다고 성화인데 기름칠을 하다 말다한 셈이다. 멈춰있던 달리기를 다시 시작한 만큼 꾸준히 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앞으로 달리는 사람으로서 꾸준한 기록 여정을 블로그에 남기기로 결정했다.
흘러가는 시간을 되돌리거나 붙잡을 수는 없지만 기록해두면 언제나 꺼내어 볼 수 있다.
여행에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인생에 남는 것은 기록뿐일지도 모른다.
